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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論하다

별이 떠도 빛나지 않는 시대

by 천광용 2008. 12. 11.

# 1

몇 해 전에 EBS에서 다큐드라마라는 것을 선 보였다. '명동백작'에 이어 '지금도 마로니에는'이란 다큐드라마였다. 형식도 신선했고, 내용도 너무 감동적이었다. 특히 EBS를 통해 보니 더욱 맛이 특별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명대사들이 가끔씩 생각나곤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멋진 대사 중 하나인 김승옥이 아들을 낳고 한 독백은 가슴을 멎게 할 정도였다.

" 별이 떠도 빛나지 않는 시대에 ..."

헉뜨! 별이 떠도 빛나지 않는 시대라니 그런 소름끼치는 말을 할 수가...
김승옥이 말했던 시대는 박정희 시대였다.


# 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24473

얼마 전에 '역사교사를 위한 근현대사 특강'이 있었다.
강사는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였다.
강의를 듣기 위해 빼곡히 자리를 채운 역사교사들의 모습이 더욱 측은해 보일 정도였다.
소위 보수라는 자들이 걸어 온 '역사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느낀다.

사실 역사를 가지고 싸운다는 내 표현이 말이 안 된다.(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뭐냐? ㅎㅎ)
학계에서 여러 연구를 거쳐 편향성을 배제한 '역사'를 교과서에 실은 것일 뿐인데,
그걸 좌편향이라 주장하는 자들과 진흙구덩이에 함께 들어간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엄연히 진흙탕이다. 연일 들려오는 뉴스는 "에이! 미친 세상!" 이라는 욕지거리 밖에 더 토해낼 것이 없다.

 

노역사학자 앞에는 100여 명의 역사교사들이 앉았다. 이번엔 분필이 아닌 펜을 들었다. 학교에 "버젓이 역사를 전공한 자신들이 있는데도, 비전공자들을 불러 아이들을 가르치는 '답답한 시대'"에 이들은 다시 책상에 앉았다.


자신들이 심사했던 교과서를 향해 이제 와서 '좌편향'이라 공격하는 정부의 논리를 수긍해서가 아니란다. "명백한 역사를 눈앞에 두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에 맞서, 역사와 학생들을 지키고" 싶어서란다. 그래서였을까. 늦은 저녁 일과를 마치고 다시 책상에 앉아 2시간 넘게 이어진 강연을 듣는 내내 그들은 진지했다. 



우리는 다시 '별이 떠도 빛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 대응은 '별이 떠서 빛나는 시대' 를 만들 것을 확신케 한다.

 

학생들은 전면에서 '졸음 투쟁'으로 서울시교육청의 현대사 특강을 무력화하고, 교사들은 뒤에서 '열공'으로 교과서 수정에 맞서니, 우리나라 공교육 의외로 믿음직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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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러나 쉬이 별이 떠서 빛나는 시대가 오진 않는다.
신새벽을 맞기 전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얼마나 밝은 시대가 올지는 모르지만 정말 지금은 너무 암흑 시기임을 느낀다.
뉴스를 보고 있자니 속이 쓰리고, 가슴이 울렁거린다.

이런 미친 세상에 미치지 않고 어찌 살 수 있을까?
반문하고 반문하고....그리고 소주 생각이 대낮부터 난다.

전교조 죽이기가 착착 진행된다.
왜 도종환의 시는 그리 생각나는지.
왜 아직도 도종환의 시보다 더 절절한 '해직교사의 편지'를 보며, 입을 앙다물고 눈을 뻐끔거려야 하는지.

촛불은 어찌하여 탄압을 받고,
무엇이 그리 당당한지 '뉴라이트'는 "쇠고기 촛불 반대"를 당당히 외친다.
그것도 청년들은 계단에서 청년실업 해결하라는 퍼포먼스도 못 하게했던 '세종문화회관' 에서...


일제고사 반대 때문에 해임당한 교사의 편지


해임을 앞둔 마지막 글

처음 일제고사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고민할 때부터,
아고라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통해 많은 격려를 받아왔는데
당당히 싸워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음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내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조퇴를 쓰고,
한 시에 있을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시 교육청으로 가야해요.

징계 통보를 받을 방학 전까지는 아마,
학교에 나갈 수 있겠지만

방학을 하고 난 2월, 그리고 아이들 졸업식에는
함께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잠도 오지 않는 이 밤에 마지막 편지를 썼어요.

쓰면서, 울면서,
그렇게 편지를 다 쓰고,
멍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있습니다.

아이가 뉴스를 보고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어어엉 하며 전화기를 붙들고 큰 소리로 울어버리더라구요

'그래, 난 당당해.'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아.'
하고 억지로 참았던 울음이,
그 아이 울음소리에 그만 터져나오고 말았어요.

"선생님 우리 그럼 헤어져야 하는 거잖아요.
졸업해도 나는 선생님 찾아갈려고 했는데
그래서 중학교 가서 교복 입은 모습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아,
어찌해야 하나요
내일 학교에 가서 아이들 얼굴을 어찌 봐야 할까요.

그저, 가슴이 먹먹할 뿐

알려주세요.
알려주세요.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머님들께 드리기 위해 쓴 마지막 편지 올려봅니다.



어머님들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

처음 아이들을 만나던 날이 생각납니다.
혹시나 첫날 만났는데 교실이 어지러울까
전날 아이들 만날 교실에서 정성껏 청소를 하고
꿈에 부풀어, 가슴 설레이며, 아이들 책상 위에 꽃을 올려두었지요.
음악을 틀고, 추운 몸을 덥혀주려고 정성껏 물을 끓여두었습니다.
하나, 둘, 자리를 채운 반짝이는 눈동자들을 앞에 두고
저는 '인연'에 대해 이야기 들려주었어요.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라고, 억 겁의 인연이라고

그렇게, 처음 만났고,
이 좁은 교실에서 일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먹고, 뒹굴고, 한 몸 같이 지내던 시간.
그 시간들을 뒤로 하고
이제 눈물로 헤어져야만 하게 되었음을 전하는 지금 제 마음을
차마 이 몇 글자 속에 담아낼 수가 없네요.

어제 오후, 저는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습니다.
교직에 처음 발 디딘 지 이제 3년.
해마다 만나는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만약 신이 계시다면, 내게 이 직업을 주셨음에
하루하루 감사하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서 이제 서울시 교육청이,
제 아이들을 빼앗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해임의 이유는,
성실의무 위반, 명령 불복종이랍니다.
제가 너무 이 시대를 우습게 보았나 봅니다.
적어도 상식은 살아있는 곳이라고, 그렇게 믿고싶었는데.
옳지 못한 것에는 굴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이를 앙 다물고 버텼는데.
시대에 배신당한 이 마음이 너무나 사무치게 저려옵니다.

'그러게 조용히 살지.'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요?
이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고 싶었어요.
학원에 찌들어 나보다 더 바쁜 아이들에게,
시험 점수 잘못 나올까 늘 작아지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우리 서로 짓밟고 경쟁하지 말자고
우리에게도 당당히 자기 의견 말할 권리가 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후회하느냐구요?
아니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양심있는 사람들이 살기엔 너무나도
잔인하고 폭력적이었음을 새삼 깨달으며,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명령에 복종하며 바닥을 기기보다는
교육자로서 당당하게, 양심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그럼에도 다시 후회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이 폭력의 시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조용히, 입 다물고 살지 못하고
이렇게 무력하게 아이들을 빼앗기는 이 모습이
가슴이 터지도록 후회스럽습니다.

울고, 웃고, 화내고, 떠들고, 뒹굴며
늘 함께했던
아이들만이 유일한 삶의 희망이었던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저 먹먹한 가슴 부여잡고 눈물을 삼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이들 서른 둘 얼굴이 하나하나 눈 앞을 스쳐 지나가
눈물이 쏟아져 화면이 뿌옇습니다
이렇게 아끼는 내 자식들을 두고
내가 이곳을 어떻게 떠나야 할까
졸업식 앞두고 이 아이들 앞에서
하얀 장갑을 끼고 졸업장을 주는 것은
저였으면 했는데
문집 만들자고, 마무리 잔치 하자고,
하루종일 뛰어 놀자고,
그렇게 아이들과 약속했는데

죄송합니다.
이렇게 떠나야만 하는 마음,
꼭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더러운 시대 앞에
굴하지 않은 가슴 뜨거운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렇게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08년 12월 11일 목요일 한울미르반 담임 최혜원 올림.



# 4

별이 떠도 빛나지 않는 시대!
눈을 뜨는 것이, 대문 밖을 나서는 것이 무서운 시대!

법치는 존재하나 인권은 없는 나라!
버티는 동생과 만사형통(萬事兄通)인 형의 나라!

그래도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으련다.
이제 4년만 버티면 되니까..(가만히 앉아서 4년을 버티면 더 악몽의 5년이 온다는 것을 잊지 않은채)
그리고 국민에게는 별이 떠서 빛나는 시대를
역사의 시계를 거스르는 이들에게는 별도 뜰 수 없는 시대를 보여줄 날을 만드리라!



         폐허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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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들풀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 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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