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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論하다/반쪽과 하나되기

북의 자신감 '평양의 미국인'을 낳다!

by 천광용 2008. 2. 27.

뜨거웠다. 음악을 듣는 귀는 부족하지만, 역사가 한걸음 나아간 것은 알 수 있었다.

미국의 교향악단이 '악의 심장부'에서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했다. 아직 전쟁 중인 상대국가에서 자신들의 애국가를 연주한 것은 "죽여라!"라는 외침일 수 있다. 그러나 공연을 본 전세계 어느 누구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연주가 있었던 동평양 극장은, 평양은 '평화의 노래'가 울려 퍼졌음을 확인했다. 뉴욕 필하모닉의 공연보다 북미의 '종합공연'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정치적으로 진전하고는 있다지만, 더딘 행보에 문화적 접근을 통해 박차를 가한 일대 사변이다.
더구나 양국의 국기가 무대 양편에 꽂아져 있고, 양국의 국가가 울려 퍼졌다.
관람석에서도 미국인과 평양시민이 한데 어울려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모두 일어서서 예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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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말고도 연주한 음악의 면면을 보면 감동은 극에 달한다.
'결혼행진곡' 앞에 연주된다는 '로웬그린' 3막 서곡은 앞으로 전개될 북미 간의 관계개선을 바라는 마음이 듬뿍 담겨져 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뉴욕필이 자랑스러워하는 '신세계 교향곡'은 가장 미국적인 곡이라 할 수 있지만, 이곡을 들은 한 평양시민의 느낌처럼 흑인이나 인디언과 같은 소수민족의 애환도 담겨있다. 그리고 너무 정치적 의미만 부여하는듯 하지만(나는 이 문화공연을 너무도 정치적인 '예술'로 본다. 사실 그래서 더 감동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클래식에 문외한인 내가 무슨 정신으로 실황을 다 봤을까?) 앞으로 북미가 펼칠 신세계를 염원하는 마음이 녹아 있었다고 본다.

다음으로 연주된 '파리의 미국인'은 언젠가 '평양의 미국인'이 나오길 염원하는 뉴욕 필하모닉의 마음이 200% 담기고, 그 이상으로 감동을 주었다. 공연 전 인터뷰에서 로린 마젤이 강조했듯이 그들이 내민 히든 카드였다. 그리고 뉴욕 필하모닉의 오늘 공연이 북미 관계에 더 크게, 더 빠르게 물꼬를 터서 앞으로 평양 시내에서 적대국의 일원이 아닌 모습으로 거닐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반영했으리라.

그 후, 로린 마젤은 뉴욕필의 전설적 지휘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캔디드 서곡'을 관람객들에게 설명하며, 그 자리에 번스타인이 있다고 믿자는 제안과 함께 '그'에게 지휘를 넘겼다. 사실 나 나름의 가장 전율은 이 부분이었다. 뉴욕필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퍼포먼스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그 음악은 미국적인 것이겠지만, 북의 현실을 보았을 때 남다르게 다가왔다. 마치 북의 '유훈정치'를 형상화했다고 느꼈다면 분명 완전 엉뚱하고, 완전 오바라고 하겠지..ㅋ 암튼 그런 느낌도 얼핏 받았다는 거지 뭐.. 지휘자 없이 교향악단이 공연한다는 것이 이런 공연에 문외한인 내게 너무 어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뉴욕필은 또 한장의 히든 카드를 꺼냈다. 전 세계에 특히 북미에 던지는 평화와 화해의 메세지는 하나 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교향악단이 북의 작곡가 최성환의 곡을 연주한 것이다. 바로 우리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한민족의 신세계 교향곡이랄 수 있는 '아리랑'을 연주했다. 또한 서울에서도 공연을 한다고 하니 자연스레 북미 간의 화해를 넘어 남북의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보낸 것이리라. 아리랑은 역시나 우리의 노래였다. 그 선율은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를 떠올리며 서글픈 마음이 들게도 했고, 우리 민족이 하나될 미래를 꿈꾸며 흥이 절로 나게 해서 자연스레 음에 따라 노래를 부르게 만들었다. 관람객들 중 몇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실황을 보는 나도 공연이 끝나자 다른 곡에서 박수를 칠 생각도 안했지만, 아리랑에서는 무한한 박수를 보냈다. 혼자 보면서 감동받아 북치고 장구쳤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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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필하모닉의 공연이 끝나고 계속된 기립박수가 여운을 길게 이끌었다. 더구나 퇴장하는 연주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그에 연주자들이 응답하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더 없이 아름다웠다. 캬~! 그때 명곡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가 나왔으면 눈물 찌~익 나왔을텐데..ㅎ 우리 민족끼리 만났다 헤어질 때 더 어울리는 노래겠지만, 이미 감동받을 준비를 충분히 해놓았던 터였고, 실상 공연의 감동이 커서 그들의 헤어짐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공연은 분명 북미 간의 관계개선과 고착된 한반도 비핵화 프로그램을 가동시킬 것이다. 특히 한반도 '종전선언'과 '북미수교'가 멀지 않은 시점에서의 공연이기 때문에 더 의미심장하다. 한반도의 봄이 곧 올것임을 연주한 공연이었다. 그러하기에 오늘의 공연은 너무나 역사적이었다. 중미 간에 있었던 과거 '핑퐁외교'를 빗대 바이올린의 소리를 가져와 '핑핑외교'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그러한 기대감의 표현이다. 그래서 공연 자체의 감동뿐만 아니라, 공연이 가져 올 파장에 대한 감동이 더 클거란 기대감으로 충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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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서 눈에 띄는 이는 79세의 고령으로 정정하게 뉴욕 필을 이끄는 로린 마젤이었다. 적극적인 발언과 특히 우리 말로 "좋은 시간 되세요", "즐겁게, 즐겁게 감상하세요", " 부탁해요" 라고 해 한층 평양시민들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었을 것이다. '철망 앞에서' 가사에 나오는 '마음의 총'을 내려 놓게하는 충분하고도 멋진 제스처였다.

공연 생중계를 한 문화방송도 '역시'라는 느낌이었다. 라디오와 티비에서 까지 생중계를 한 과감함은 박수 받을만 하다. 다만 평양에 있는 아나운서는 '북측'이라는 표현을 쓰는 반면, 남의 스튜디오에 있는 아나운서는 줄곧 '북한'이라는 용어를 쓴 점, 미국의 국기는 '성조기'라 하면서도 북의 국기는 '인공기'라 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보다 보니 북은 '국가'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잠깐 고민이 들었다. 유엔에 동시가입 등을 하였기에 '국가'라고 인정해야 하지만,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로 고착화되는 면을 강조할 수도 있기에 역시 딜레마다.

이번 공연은 북의 방송에서 가정에 생중계를 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는 북에 대해 '억압'과 '통제'만을 생각하는 남과 서방세계에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북을 폐쇄국가라 몰아부치고 싶은 이들에게도 할말을 잃게 만든 조치였다.(그렇다고 그들이 생각을 쉽게 바꿀거라 생각진 않지만..) 북은 이번 공연보다 더 파급력이 큰 문화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바로 들려오기도 했다. 바로 '에릭 클랩튼'의 평양 공연이 내년에 있을 거란다. 클래식도 아닌 '팝'이 울려퍼질 거란 점에서 정말로 성사된다면 이번 공연보다 더 큰 뉴스거리가 될 것이고, 그 후과는 상당할 것이다. 어쩜 오늘의 클래식공연이 '나비효과'로 만들어 냈다고 재조명을 받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런데 북은 왜 이런 파격적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북의 자신감이라 할 수 있다. 몇년 전 미국의 대북봉쇄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각국과 외교관계를 새로이 하거나 복원하며 미국 '역포위' 작전, 외교라는 말을 선보이기도 했다. 북은 이미 북미 간의 공방은 끝났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내적으로도 경제적인 분야에 집중해 강성대국을 이루겠다는 자신감으로 차있다. 이제 그 힘을 공세적으로 전 세계에 떨치겠다는 것이다. 어느 국가도 이루지 못한 북미 간의 대결전을 승리로 장식한 힘을 세계 만방에 떨치겠다는 생각, 그것은 강성대국으로 달려가는 북의 자신감의 표현인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줄곧 북의 뉴스를 접할 때면 '파격'이나 '이례적'이란 뉴스를 많이 접할 것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도 남북이 모두 잘 살수 있도록 하자고 했으니 반길 일이다. 이런 북의 자신감은 통일도 성큼 다가오는 상상에 빠지게 한다. 아니 통일이 멀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덧 1 > 월드컵 예선경기에 대한 협의가 결렬되었다는 뉴스가 들린다. 협상 내용을 떠나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이는 이번 협상을 두고 국방위원장에게 통큰 모습을 보이란 말도 했다. 그리고 이번 공연으로 인해 성조기가 걸리고, '성조기여 영원하라'도 울려 퍼졌는데, 남의 태극기와 애국가는 안 될 일이 무엇이냐고도 할 것이다. 분명히 2005년 열렸던 동아시아 축구대회에서 울려 퍼진 북의 애국가와 인공기 게양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북에서도 가능해야 한다고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 '남'의 상식선이기만 할 수 있다. 북의 통큰 모습은 현충원 참배로 이미 절정을 달했다. 미국과 북은 국가 간의 관계이고, 남북은 국가 간의 관계이기 보다는 민족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북은 인공기나 태극기보다는 통일의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한반도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도 '남'에 있는지라 북의 태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무난하게 협상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특히 이번 공연의 여파가 가장 먼저 이 부분에서 미쳤으면 하는 마음도 가져 본다. 그런데 왜 꼭 인공기대 태극기로 대결구도로만 가야하나 그게 절대선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도 충분히 한반도기를 수용할 수 있는 통큰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지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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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2 > `2008년 키 리졸브 및 독수리연습'을 위해 부산항에 미 핵잠수함 오하이오 호가 21일 작전사령부 부두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은 24기의 트라이던트 미사일 발사대를 갖추고 있으며 각 미사일은 최고 8개의 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오하이오는 언론에 그 모습을 공개했다. 참 씁쓸한 뉴스였다. 한 손에 문화를 들고 화해와 평화의 제스처를 취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한반도 비핵화 어쩌고 저쩌고 떠들면서 보란듯이 핵 잠수함을 들이민다. 그것도 북과의 전쟁을 대비한 훈련을 위해서 말이다. 사실 미국의 핵 잠수함이 우리 영해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정전협정'이나 '남북합의서'를 뒤흔든 처사다. 참으로 한반도의 서글픈 현실임을 오늘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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