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y life

우울한 날은 술이 더 안 땡긴다

by 천광용 2008. 12. 5.

하루 종일 수업 때 발표할 보고서를 작성했다.
열심히 워딩하고, 완벽하게 마무리는 못했지만, 암튼 가서 발표는 했다. 교수님이 국제경제학에 맞지 않게 정치적이라는 지적도 하셨다. 저번 '협상론' 수업에서도 내 발표가 정치적인 부분에 치중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같은 책을 봐도 내 눈엔 통계 분석보다는 배경이나 성과, 역효과가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고 집에 가는 길.
날은 차갑고 쓸쓸하다.
버스를 기다리며 전공책을 가슴팍에 꼭 껴안고 있는 아이를 힐끗 쳐다보며 '춥겠다. 말이나 걸어볼까? 이쁘다. 어리구나...' 등 온갖 생각을 해 봤다. 또 나의 이상형에 대해서도. 갖고 있는 책을 보아하니 대학 1,2학년이라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은 진전이 없고, 나의 이상형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내 이상형...
참하고 도발적인 여자
남성적이면서 여성적인 여자
기품이 있으면서도 쾌활하고 바보짓도 할 수 있는 여자
현실적이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전진하는 여자...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양극단을 모두 품고 있는 예쁜 여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옆에 없네!


종로를 지나면서 이내 여자 생각은 접었다.
그리고
나를 생각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난 왜 이리 스스로를 벼랑으로 모는건가?
'여유'라는 것을 적절히 사용할 수는 없을까?
생활에서 우선순위를 못잡으니 눈에 띄는 것만 하다가 시간을 놓치고 만다. 매번 사람을 만날 때 늦고, 매번 하기로 한 것을 늦게 하거나 가까스로 하고.
그럴때마다 속이 쌔까매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리 어리석은 걸까?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고 시간을 지배하는 삶은 나와 거리가 있는걸까? 그런데 그렇게 사는 건 행복한건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슴이 콱콱 막혔던 오늘.
찬 기운 들이마시며 집에 돌아오늘 길. 옥상에 올라오니 겨울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운 밤.


우울하다.
전화기만 만지작 거린다.
누구 불러내서 술이나 꼴짝 거릴까도 싶었는데 이렇게 우울한 날은 술이 더 안 땡긴다. 누군가를 불러서 수다 떨고 싶을 거라고 내가 나를 보지만 그냥 만다. 이럴 때 마신 술은 '독'이 되니까. 그리고 다음날 우울함이 이어지니까...밝은 햇빛이 나의 우울함을 더 키우니까...


그러고보니 주머니에 동그랑땡이 없어서 우울함에 한 몫 더했다.
31살! 통장잔고는 0원!
결혼자금을 만들었다는 친구의 이야기도, 자기 돈으로 와인바를 열었다는 친구도, 뭐 그들에 비해 적은 돈이지만 언니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친구도 그렇게 부럽지 않은데...내 통장잔고와 텅텅 빈 내 지갑은 '뭘하고 사나?'라는 생각을 들게했다.
꿈을 쫓는 삶에 무한한 배짱을 부렸는데 현실이라는 녀석이 조금은 빼꼼 얼굴을 내민다. '뭘 먹고 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울하고 우울한 오늘.
술은 마셔야 할 상황이나 안 땡긴 오늘.
외롭네...쓸쓸하네...

자고나면 괜찮아지겠지?
'데스페라도'라도 들으며 자야겠다.



인도를 최초로 통일시킨 아소카 군주에게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동생이 있었다. 동생이 국법을 어기자 왕은 이런 명령을 내렸다.

"네 죄가 커서 일주일 뒤에 사형시키겠다. 그러나 특별히 불쌍히 여겨 일주일 동안이라도 왕처럼 즐길 수 있도록 해 주겠다."

동생은 기왕 죽을 바에야 실컷 즐기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마다 험악하게 생긴 장사가 나타나서는 "죽을 날이 엿새 남았소이다!"  "죽을 날이 닷새 남았소이다!" 하고 외쳤다. 이에 동생은 점점 불안해졌다.

시간이 흘러 사형을 집행하는 날이 되었다. 왕은 동생에게 잘 즐겼냐고 물었다. 동생이 대답했다. "저 장사가 눈을 부릅뜨고 시시각각 남은 시간을 말하는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말했다.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누구나 죽을 날짜를 향해 가고 있음을 알아햐  한다. 그러니 어찌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겠느냐!" 이말을 들은 동생은 크게 깨닫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기로 다짐했다.


'My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우 그리운 날  (3) 2008.12.25
한 사람의 동지에 천하를 얻는 우리네 삶  (0) 2008.12.05
가을이 가버렸다. 억새도 못 봤는데...  (0) 2008.11.26
하루가 쉽게 간다  (0) 2008.02.22
마법의 옷을 입고 있는 나  (0) 2007.10.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