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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김광석의 '꽃'을 떠올리다

by 천광용 2008. 12. 31.


오늘도 여의도 칼바람을 맞으러 갔다.
MB악법을 막아내는 결연한 민중의 투쟁에 함께 하기 위해.
갔더니 '언론노조'에서 큰 함성을 지르며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 언론노조원들의 문화공연이 이어졌는데, 80년대 혹은 90년대 초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뭐 내가 그 당시를 기억할만큼의 나이는 아니나 들어왔던 문화적 느낌으로는)
 


한 노래패가 올라와서 김광석의 '나의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를 함께 부르는데 난 갑자기 김광석의 노래를 왜 투쟁판에서 부르지 못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 노래가 떠올랐다.

김광석의 '꽃'
김광석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느 때 이 곡을 이야기했던 적도 있었으리라.

김광석의 죽음 후에 그의 공연 음반이 나왔었다.
거기에 '꽃'과 관련된 글이 쓰여 있다.
그 글귀가 오늘 문득 생각난 것이다.
 


요즘 '도종환'이 새삼 떠오른다면,
아마도 당연히 내겐 이 '꽃'이라는 곡이 떠오르는 게 짝이 된다.
그 둘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전교조', '해직교사'이다.




문대현 작사, 작곡


노찾사에서 함께하던 친구, 문대현의 곡이다.

노래를 하겠다고 통기타 하나들고 왔다갔다하던
그 시절, 부모님께서는 걱정을 하셨다.
그러나 대구에서 교사로 지내시다가 교원노조로 해직되셨던
아버지께서 처음 노찾사 공연에
오셔서 노래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시고는
아무말씀도 없으셨다.

그저 언제나 곁에서 바라봐주셨다.



김광석의 아버지가 이 노래때문에 아들을 믿었는지 어쨌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곡에 쓰여진 멘트가 왠지 연결된다.
그리고 충분히 이곡이었을거라는 생각도 드는 노래다.


김광석의 아버지도 해직되었던 역사.
그 역사는 21세기, 바로 지금도 '면면히', '유구하게' 흐르는 '역사'다.

그래서 다시 김광석의 '꽃'이 애달프게 울린다.
그리고 이런 개뼈다귀 같은 역사는 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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