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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세상보기

‘牧民’, ‘心書’

by 천광용 2009. 10. 12.

‘牧民’, ‘心書’
 
나의 고향은 전남 강진이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한 곳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정약용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다. 강진에는 다산초당, 다산동상, 다산로 등 그를 기리는 뜻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더불어 다산에게서 수학을 했던 이들의 흐름이 이어져 다산의 학문을 연구한다거나 실사구시의 정신을 현대에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 그래서 그는 내 마음 속에 따라야할 큰 스승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다산 학문의 집대성이라는 ‘牧民心書’조차 변변히 읽어 보지 못했다. 허나 온갖 세상의 이치도 때가 되어야 인연이 있듯이 지금이 그 때가 아닌가 싶다.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의 학문을 집대성했다. 중앙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차분한 마음으로 돌아보니 더 많은 것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또한 강진이라는, 임금이 사는 곳과 한참 먼 곳에서, 통치가 어떠한지 면밀히 관찰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모두 펼치지 못하고 접힌 꿈이 서려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한 고을에 부임하는 수령의 처음부터 마무리를 할 때까지의 마음가짐과 처신에 대해 세세히 적고 있다. 그 세세함이 과할 때는 상황에 맞는 말까지 일러두기도 한다. 그럼에도 전반에 흐르는 ‘청렴’과 ‘애민’은 목민관이 깊이 새겨야 할 덕목으로 정약용의 진심을 알만하다. 또한 정약용은 꼿꼿함만을 강조하진 않는다. ‘개혁’을 중시하지만, 단박에 이루는 것을 조심하고, 너그러워야 뭇사람을 얻는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더불어 규율을 어떻게 세워야 하며, 윗사람과 아랫사람 심지어 가족의 처신에 대해서까지 언급하고 있다. 
 
자서에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천할 수 없기에 ‘心書’라 한 정약용의 좌절과 당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난다. 스스로 남들이 따를 만한 모범을 세우고 싶으나 귀향 가 있는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집대성하며 목민관들이 읽고 따를 수 있는 규범서를 쓴 것만으로도 이미 빛나는 실천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목민심서를 읽고 실천하는 미담이 전해지기보다 박제되어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심서가 된 현실을 지적하는 역자들의 말에 깊은 공감이 간다.
 
정약용이 말하는 목민관의 역할과 자세는 지금도 새길만하다. 봉건제가 무너지고, 선거를 통한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지자체까지 실시하는 요즈음에는 그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牧民’이라는 부분은 여전히 유교적이며 봉건적인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牧’은 소나 양 등을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백성을 통치한다는 기본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정약용은 지배계급으로써 여전히 통치의 대상으로 백성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애로운 목민관보다는 엄격한 목민관의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또한 당시로써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을 백성과의 ‘소통’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으로 이야기되니, 거를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당시의 시대적 환경이 작용한 어쩔 수 없는 관점이라 할 수 있지만, 현대에 목민심서를 읽을 때, ‘민’을 통치의 대상이 아닌 사회나 국가의 중요한 주체로 보는 관점을 명백히 세워 현대에 맞는 비판적인 수용이 필요하다. 
 
요즈음 언론매체에서 보이는 정치인과 행정가들은 ‘민’을 안중에 두지도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한 부패한 자가 떳떳이 자신에게 돌을 던질 자 있으면 나와 보라는 배짱까지 부린다.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행적과 처신에 눈 뜨고 못 볼 일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목민심서를 읽게 하고 싶다. 또한 읽은 것에 그쳐 ‘심서’로만 남기지 말고, 직접 실행에 옮기게 하고 싶다. 특히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라는 말을 새겨 부패를 떳떳이 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지도자와 사회가 되어야 한다. 청백리가 현대에 없다지만, 베트남에는 호치민이 있다. 위인전에나 있는 비현실적인 존재는 아닌 것이다. 
 
“아이가 어미 곁에 즐거이 놀 적에는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하더니, 어미가 떠나자 아이가 울부짖으니 추위와 배고픔이 닥쳐서지 않은가.”로 끝맺음한 정약용이 말한 목민관의 마지막처럼 자기 소임을 다한 지도자가 떠남을 아쉬워하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목민심서를 읽은 나부터 청렴과 애민을 중시하며 갈고 닦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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